초등생부터 코딩, 고교생은 게임 만들고 대학생 되면 아마존이 모셔가는 시애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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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910회 작성일 19-08-02 11:50본문
[청년 미래탐험대 100] [31] 美시애틀 코딩 공교육 현장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옥선교씨
꽤 오랫동안 '정보기술(IT) 강국'으로 불린 한국은 과연 이 타이틀을 얼마나 더 지킬 수 있을까요. 21세기 가장 큰 화두는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을 포함한 컴퓨터 기술인 만큼 우리 정부도 이를 필수 교육과정에 조금 첨가하는 방식으로 인재를 길러내려 애쓰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충분할까요.
저는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3학년 옥선교(23)입니다. 저희 학부 정원은 55명입니다. 너무 적어서 놀라셨다고요? 제가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더 의외였던 사실은 동기 중 절반 정도가 대학에 와서야 코딩(프로그래밍)을 처음 접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한국 공교육이 대학 입시를 향해 '돌진'하도록 설계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요즘 뉴스를 보면 미국·인도 같은 나라의 꼬맹이들이 출연해 무지막지한 실력을 뽐냅니다. 어떻게 가능할까, 우리는 괜찮을까, 너무 뒤떨어지지 않을까. 호기심과 불안이 발동했습니다. 그 답을 찾기 위해 이달 중순 저는 미국 워싱턴주(州) 시애틀로 향했습니다. 미국에서 코딩 공교육이 가장 잘 되어 있는 지역이란 이야기를 들어서입니다.
실제로 접한 시애틀의 코딩 교육은 화끈하고 체계적이고 정교했습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코딩을 의무적으로 배우되 아이들이 흥미를 잃지 않도록 역사·수학 같은 교과에 이를 자연스럽게 섞어 넣은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렇게 코딩과 친해진 아이들은 고등학생이 될 즈음 게임을 만듭니다. 대학생은요? 저보다 두 살 어린 미국 대학생은 이미 '인터넷 공룡' 아마존에 프로그래머로 채용됐다며 웃었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라는 구호가 요란합니다. 코딩 교육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힌트를 시애틀에서 보고 돌아왔습니다. 나누고자 합니다.
시애틀과 가까운 중소 도시 벨뷰교육청 홈페이지엔 아이들이 프로그래밍을 배우는 동영상이 올라와 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쯤 되는 여자아이가 미술시간에 노트북 컴퓨터로 집을 디자인합니다. "이 집은요, 지붕이 뾰족 모자처럼 생겼고요. 창문은 제 눈처럼 동그랗게 만들었어요." 선생님에게 집 디자인을 보여주면서 자랑하는 얘기입니다. 과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컴퓨터를 3D 프린터에 연결해 작은 집을 실제로 찍어냅니다. 벨뷰가 속한 워싱턴주는 이른바 'K-12(유치원부터 12학년까지) 컴퓨터 과학 커리큘럼'을 채택해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컴퓨터 교육을 합니다. 초등학교 때는 코딩(컴퓨터 프로그래밍) 입문용 프로그램인 '스크래치' 등을 의무적으로 익히도록 적시하고 있습니다. 최소 90시간이 투입됩니다. 한국 초등학교에선 5~6학년 때 코딩을 약간 배우는데, 들어야 하는 수업이 연간 17시간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시애틀이지만 구구단도 못하는 아이들이 코딩을 배운다? 저도 처음엔 현실감이 좀 떨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18일 에릭 퍼거슨 벨뷰교육청 교수·학습 담당자를 만나 교육 철학을 듣고는 왜 이들이 코딩 교육에 이토록 열심인지 수긍이 되었습니다. "컴퓨터 교육을 일찍 시작하지 않으면 중·고등학교 때 컴퓨터를 배우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어요. 어렵고 막연하게 느끼는 거죠. 우리는 그래서 초등학교 교육과정에 컴퓨터 과정을 통합시켰습니다. 역사·수학 같은 다른 과목에 코딩 교육을 자연스럽게 섞어 넣는 방식이죠." 이 동네 학생들의 숙제는 예를 들어 이런 식이라고 그는 설명했습니다. 역사 시간에 내주는 숙제가 'A나라에 대한 홈페이지를 만들어보기'라고 합니다. 수학 문제를 풀 때도 (계산기도 쓰면 안 되는) 한국과 달리 컴퓨터를 시켜서, 즉 프로그래밍을 활용해 해법을 찾아보는 식이고요.
이런 아이들은 '겁 없는 코더(coder)'로 자라납니다. 어릴 때 영어를 배운 아이들이 후일 '영어 울렁증'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듯이 꼬맹이 때 코딩과 친해진 청소년들은 컴퓨터를 그만큼 편하게 여긴다는 겁니다. 워싱턴대에서 여름방학을 맞아 열린 코딩 캠프를 찾아가 이런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중·고등학생들이 게임을 만들고 있더군요. 게임 제작에 열중하는 콜린 매독(15)에게 말을 걸어 보았습니다. "게임 개발에 관심 많나 봐요?" "네, 재밌어요." "여기까지 만드는 데 얼마나 걸렸어요?" "어젯밤부터 오늘까지 계속 했네요." "이 프로그램 사용법 어떻게 배웠어요?" "…. 그냥 쉽던데요."
코딩이 '쉽다'는 이 동네 친구들을 위해 워싱턴주의 고등학교엔 고급 코딩 수업이 포함돼 있습니다. 뜻만 있다면 무려 16개 코딩 교과 중에 하나를 골라 들으면 된다며 교육청 퍼거슨씨가 교육과정을 보여주었습니다. '웹 모바일' '게임 개발'…. 한국에선 대학생이 배울 법한 과목이 수두룩했습니다.
저의 초등학교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게임을 하다 컴퓨터에 관심이 커진 저는 자연스럽게 코딩에도 흥미를 느꼈습니다. 하지만 지방에 살던 제가 코딩을 배울 방법은 거의 없었습니다. 게다가 대학 입시에 도움 안 되는 코딩을 배우겠다는 아들을 부모님이 탐탁하게 여기실 리가 없었죠. 독학으로 약간 겉핥기만 하고, 대학으로 기회를 미뤄야 했습니다. 만약 제가 이 동네에서 자랐다면 어땠을까요. 날고 기는 코딩 신동(神童)이 되지 말란 법 있습니까!
벨뷰교육청 홈페이지는 왜 코딩을 공교육에 포함했는지, 그 이유를 이렇게 천명하고 있습니다. '19세기는 산업혁명, 20세기는 공학혁명, 21세기는 디지털혁명의 시대다. 2020년까지 컴퓨터 분야 일자리는 136만6200개 늘어난다고 정부는 전망한다. 우리는 (공교육을 통해) 우리 학생들에게 컴퓨터 과학이라는 이 길을 인종·성별 등의 차별 없이 모두에게 열어주려 한다.'
시애틀에 있는 워싱턴대 컴퓨터공학과 정원은 490명이고, 이는 곧 600명 이상으로 늘어날 예정이라고 합니다. 한국의 서울대·고려대·연세대·카이스트 전체를 합친 숫자보다 많습니다. 한국의 대학 정원은 경직돼 있고, 초·중·고등학교 코딩 교육은 여전히 미미합니다. 교원 정원 문제나 '밥그릇' 싸움 때문이란 얘기도 들립니다. 그건 아마도 어른들의 문제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디지털이란 미래가 뻔히 보이는 지금 그런 문제로 미적대도 되는지 의문입니다. 시애틀의 아이들 앞에 어른들이 열심히 깔아준 디지털의 길, 우리 아이들에게도 열려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컴맹보다 무서운 코맹… "코딩 모르면 뒤처질 수밖에 없다"
코딩 천국 시애틀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를 위한 코딩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해 관련 기업에 취업하지 않더라도 모두가 코딩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을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렸던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에 이어, 앞으로 코딩 시대에는 코딩 디바이드(coding divide)가 된다는 것이다.
보편적 코딩 교육이라는 기치 아래 2013년 만들어진 비영리단체 코드닷오알지의 대외 협력 담당자 커스틴 오브라이언과 지난 10년간 일선 고등학교에서 컴퓨터 과목을 가르쳤던 워싱턴대 로런 브리커 박사를 만나 그 이유에 대해 들었다.
"컴퓨터 관련 기술은 우리 삶 곳곳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코딩을 익혀야 합니다. 점점 더 그렇게 돼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교육을 받지 못해 뒤처지는 사람이 나올 수밖에 없겠죠. 또 관련 기술을 운용하는 사람이 특정 성별·인종으로 집중될 경우 예상치 못한 차별 문제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컴퓨터 기술은 어렵고 남자에게 더 적합하다'는 성(性) 고정관념을 깨는 것을 목표로 다양한 아이들에게 '코딩은 재미있다'는 점을 널리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오브라이언)
"컴퓨터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은 과학기술에 내재한 위험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합니다. 머신러닝은 얼굴 인식에 쓰일 수도 있지만 범죄나 사생활 침해에 악용될 수도 있습니다. 컴퓨터 투표 시스템은 편리하지만 해킹당하면 민의를 왜곡하는 결과를 가져오고요. 이런 점을 이해할 지적 기반이 있어야 시민으로서 제대로 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교육 기회 차이에 따른 사회적 배제나 박탈을 줄이려면 모두를 위한 컴퓨터 교육이 확대돼야 합니다. 특히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를 위해서는 더 적극적인 배려가 필요합니다."(브리커)
출처 : 조선 일보 시애틀=옥선교 탐험대원 취재 동행 박해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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